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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1세/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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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겨진 1년 === 1603년 봄, 아버지가 [[엘리사벨 1세]]의 사망으로 루이나 왕위를 이어받아 벨포르로 떠났다. 어머니와 형, 누나가 모두 함께 갔다. 여덟 살의 카렐만 남았다. 겨울 바다를 건너는 여정을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궁정 의사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이후 1년 남짓을 카엘몬트 성에서 유모 마르가 텔런과 소수의 시종만을 두고 지냈다. 이 시기 그가 아버지에게 보낸 짧은 편지 몇 통이 남아 있는데, 서기가 대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서투른 필체로 적힌 것들이다. 대부분 자신이 얼마나 건강해졌는지를 알리는 내용이며, 언제 데리러 오는지를 묻는 문장이 반복된다. 답장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카렐이 벨포르에 도착한 것은 1604년 여름이었다. 새 왕궁에서 형과 누나는 이미 자기 자리를 잡은 뒤였고, 궁정 사람들은 대공의 셋째 아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인 방의 구석에 앉아 벽에 걸린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는 아이로 기억되었다. 훗날 유럽에서 손꼽히는 미술 수장고를 이루게 되는 수집벽의 출발점이 이 무렵이었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남부 고지에서 그는 [[남부 고지 장로회]]의 간소하고 엄격한 예배 속에서 자랐다. 벨포르에서 처음 접한 [[루이나 교회]]의 예식은 그에게 전혀 다른 세계였다. 촛불과 성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움직이는 사제들의 질서정연함은,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던 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30여 년 뒤 그가 자신이 자란 땅에 그 예식을 강요하다 왕관을 잃게 되는 일의 씨앗이 여기에 있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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